[인터뷰] 유니폼 벗은 최대성 "선수 시절, 기억에 남는 경기는 한만두”
2020.05.19 12:45:41
 

[스포탈코리아] 김현서 기자= 파이어볼러, 159km 그리고 한만두

2004년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을 품에 안으며 프로 데뷔. 비공인 구속 ‘159km’ 신화를 쓰며 11년간 고향 팀에서 핵심 불펜으로 활약하다 2015년 kt 위즈로 트레이드. 갑작스러운 이적과 함께 슬럼프에 빠지면서 3년 동안 1군 등판은 단 8차례. 2017년 2차 드래프트에서 두산 베어스의 지명을 받아 부활을 노렸지만, 팬들이 기억하는 건 ‘한만두’. 결국 고질적인 제구 난조를 극복하지 못하며 2019년 프로 선수 생활을 마감. 그리고 올해부터 최대성'씨'(35)가 된 그의 요즘은?

- 은퇴 후 근황이 궁금하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

▶선수 시절 배웠던 것들을 학생들이나 야구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알려주고자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 시작한 지는 이제 4개월 정도 됐다. 적성에도 맞나. 재미는 있지만 아무래도 배우는 학생들의 실력 향상에 대한 부담감도 있다.

- 가르칠 때 중점을 두는 부분은.

▶기술적인 면에서 기본기도 있지만 사실 소통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 몸을 직접 빌려서 던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서로의 피드백을 중점에 두고 있다. 사실 (선수 시절) 소통이 아쉬웠다. (코치, 감독님들이) 너무 좋은 약을 떠먹여 주셔도 그 약이 나에게 독약이 될지 좋은 약이 될지는 모르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소통을 못 한 것이 아쉬웠었다.

- 선수 시절 기억에 남는 지도자는 누구인가.

▶아무래도 양승호 감독님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부족한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많이 주셨고 이로 인해 많은 팬이 기억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항상 감사함을 느낀다.

- 2세가 태어난다면 운동선수로 키울 생각이 있나.

▶아내(프로 골퍼 박시현)는 야구선수로 키우고 싶어 한다. 야구는 너무 힘들어서 골프선수로 하자고 했더니 골프는 더 힘들어서 안 된다고 하더라. 우스갯소리로 야구는 안 힘드냐고 했더니 '야구하는 오빠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기 때문에 아들을 낳게 되면 꼭 야구선수로 키우고 싶다'고 하더라. 결국 아내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 프로 데뷔 후 기억에 남는 한 경기를 뽑자면.

▶많은 분이 아시는 ‘한만두? 한만두’(한 이닝 만루 홈런 두 방)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쉬웠던 쪽으로? 안 좋은 장면이었지만 반대로 나에겐 좋은 기억이다. 사실 롯데를 떠날 거라는 생각을 못 했었다. 의도치 않은 일로 떠나게 되면서 슬럼프에 빠졌다. (kt 이적 후)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에 걸리면서 공을 이유 없이 똑바로 던지지 못했다. kt에 있는 동안 팬들에겐 너무 죄송했지만, 당시 2군에서 매일 1000개씩 공을 던져도 감이 안 올 정도였다.

결국 은퇴를 고민하던 중 두산에서 손을 내밀었다. (이적 후) 환경이 변하다 보니 전만큼 공을 전력으로 던질 수는 없었지만, 스트라이크 존에 넣을 수 있게 됐다. 그러고 나서 김태형 감독님이 기회를 주셔서 마운드에 올랐는데 그 사달이 났다. 그렇지만 스스로는 타자가 칠 수 있는 공을 던질 수 있게 돼 뿌듯했다. 두산 팬들에겐 정말 죄송했다.

- 첫 번째 만루 홈런 맞은 뒤 김태형 감독이 바꿔줬으면 하는 생각은 없었나.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로하스 선수가 쳤을 때 뜬공인 줄 알았는데 당시 공인구 반발력이 좋은 시절이라 멀리 가더라. 넘어갔구나 했다. 사실 두 번째 만루 홈런을 맞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당시 오랜만에 1군 등판이라 아내와 장모님이 경기장에 오셨고 어디에 앉아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한만두 이후) 눈물 흘리시는 걸 봤는데 아무래도 관중들이 하는 소리를 들으셨던 것 같더라.

- 최고의 경기는 언제라고 생각하나.

▶구속 159km 공을 원하는 코스에 제대로 찔러 넣었던 사직에서 열린 한화전이 기억에 남는다. 선수로서 최고의 공을 던졌던 것 같다. 당시 전광판에는 스피드가 찍히지 않아 그냥 빠른 공이 갔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기사를 보면서 구속을 제대로 알게 됐다. 경기 끝난 뒤 장성호 선수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나. 너무 대선배님이어서 피드백을 따로 듣지는 못했지만, 소문으로는 공이 너무 빨리 들어와서 놀랐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들었다. 그리고 지금 NC에 있는 용덕한 코치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어쩐 일로 제대로 던졌냐?’고 하더라. (웃음)

- 은퇴를 결정했을 때 어떤 심정이었나.

▶두산에서 미리 말씀해주셔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특정 팀은 말할 수 없지만, 미국에서 제의를 받고 준비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이기 때문에 미국에 가게 되면 아내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아내 의견을 물었더니 '(선수 시절) 오빠 너무 힘들어하는 거 같아서 더는 그 모습 보기 싫다'고 하더라. 아내의 의견을 존중해 깔끔하게 은퇴를 결정했다.

- 현재 KBO 강속구 투수들이 본인과 똑같은 제구 문제를 겪고 있다. 조언이나 해줄 이야기가 있나.

▶아무래도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 대부분이 기술적인 부분보다 심리적으로 불안해 할 것이다. 언제든지 볼을 던질 수 있고 이로 인해 경기력까지 안 따라올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마운드에서 소극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어차피 내가 부족해도 팀에는 좋은 투수들이 대기하고 있으니 신나게 던졌으면 좋겠다. 그냥 구속 믿고 스트라이크 존에 던지면 안 되나. (강속구 투수들은) 너무 팔을 빠르게 돌리기 때문에 오차 범위가 기본 투수들보다 클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구속 140km대 던지는 투수보다 몸을 격하고 빠르게 사용하기 때문에 힘들다.

- 롯데 시절 ‘이왕기름을 넣을거 최대성능으로 가득염’ 이라는 말을 들어봤나. 당시 세 선수가 이야기 나눈 적 있는지 궁금하다.

▶많이 들어봤다. 팬들이 댓글을 달면 선수들한테 다 들어오기 때문에 서로 놀리기도 한다. 양상문 감독님 시절로 기억한다. 사실 불은 지른 건 이왕기 선수와 나, 두 명인데 재미있는 문구를 위해 가득염 선배님이 피해를 보신 것 같다.

- 1985년생 동갑내기 김주형 선수와 도플갱어 수준으로 닮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알고 있나.

▶닮았나요? 닮았어요? (웃음) 부산고 재학시절 광주동성고와 시합을 하러 갔는데 그때 주형이를 처음 보고 닮아서 놀랐다. 당시 감독님들이 둘을 따로 불러서 인사까지 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어머니도 주형이 보고 놀랐다고 하시더라.

- 롯데, kt,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올 시즌 어느 팀을 응원하는지 궁금하다.

▶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하는 질문 같다. 아무래도 몸을 담았던 곳이고 선수 시절 도움을 주셨던 분들이 계신 팀들이기 때문에 세 팀 모두 응원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세 팀이 맞붙었을 때 조금 더 마음이 가는 팀이라도? 두산은 워낙 잘하고 kt도 이강철 감독님이 오시면서 안정기에 접어든 것 같다. 근데 롯데는 계속 성적이 안 좋다 보니 마음이 무거웠는데 요새 잘하고 있더라. 조금 치우치자면 롯데.

- 응원했던 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 ‘팬’이라는 단어 자체가 많이 죄송하다. 응원해주시는 만큼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지 못해서 항상 마음의 짐을 갖고 있었다. 언젠간 보답해야지 했는데 선수 생활을 그만두게 돼버렸다. 그래도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는 가까워졌다고 생각한다. 언제든지 부담스러워 마시고 지금 지도자로 있는 엘론베이스볼랩(야구 교실)에 오셔서 야구에 관한 이야기도 괜찮고 지나가는 커피숍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개인 SNS도 있으니 메시지 보내주시면 언제든지 답장을 해드리겠다.

- 앞으로 목표는 무엇인가.

▶선수 시절 많은 코치님의 도움을 받았다. 좋은 영향을 받은 만큼 나누고 싶다. 훌륭한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될지 또 다른 길을 선택할지는 모르겠지만 야구를 하고 있는 분들에게 어떤 방향이든 꼭 도움이 되고 싶다. 앞으로 재능기부라든지 여러 가지 많이 할 생각이다.


사진, 영상= 스포탈코리아
장소 제공= 라커디움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