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클볼의 노신사' 필 니크로, 은퇴 직전의 그가 토론토로 향한 이유
2020.12.29 20:13:10

 


[스포탈코리아] 김동윤 기자=1977년 창단돼 올해로 44주년을 맞이한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짧은 역사 탓에 명예의 전당 입회식에서 토론토의 이름이 불릴 일이 많지 않았다.

현재까지 토론토 모자를 쓰고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것은 전설적인 2루수였던 로베르토 알로마(2011년) 단 한 명. 유족의 뜻으로 모자를 선택하지 않은 '영원한 에이스' 로이 할러데이(2019년)까지 범위를 넓혀도 두 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알로마보다 먼저 명예의 전당 입회식에서 토론토를 언급한 노신사가 있었다. 지난 12월 28일, 향년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너클볼의 대가' 필 니크로였다.

니크로와 토론토의 인연은 3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7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뛰고 있던 만 48세의 니크로는 조바심과 동시에 한계를 느꼈다. 1958년 밀워키 브레이브스(現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입단한 니크로는 1964년 메이저리그 데뷔 후 토론토 입단 전까지 23년간 860경기 318승 272패, 5,389이닝 3,335탈삼진을 기록했다.

당장 은퇴해도 메이저리그 역사상 7명(2020년 기준 10명)밖에 없는 300승 - 3,000탈삼진 기록 보유자였고, 명예의 전당 입성이 확실시되는 전설적인 투수였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월드시리즈 무대를 한 번도 밟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았다. 애틀랜타에서 20년을 뛰었지만 니크로의 포스트시즌은 1969년, 1982년 각각 한 차례씩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마운드에 오른 것이 전부였다.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아보기 위해 떠난 뉴욕 양키스는 암흑기(1982년부터 1994년까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였고, 클리블랜드는 전형적인 약팀이었다.

 

 

니크로는 월드시리즈를 위한 마지막 행선지로 창단 11년 차의 신생팀 토론토를 선택했다

 


니크로가 마지막 희망을 안고 찾아간 곳은 명단장 팻 길릭 체제에서 가능성을 보여주던 토론토였다. 1987년 8월 9일(이하 현지 기준) 당시 토론토는 지구 1위를 달리고 있었다. 고른 타선의 활약과 지미 케이 - 짐 클랜시 - 데이브 스티엡이라는 탄탄한 3선발을 보유한 덕분이었지만 하위 선발진이 불안정해 보강이 필요했고, 클리블랜드에 2명의 선수를 내주고 니크로를 영입했다.

니크로는 말년에 찾아온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에 "누구나 경쟁력 있는 팀으로 가면 기뻐할 것"이라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고, 토론토 팬들도 트레이드로 명예의 전당급 투수가 넘어온 것은 니크로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를 환영했다.

하지만 니크로는 8일 간격으로 나선 3경기에서 평균자책점 8.25를 기록하며 팀에 보탬이 되지 못했다. 앞선 2경기에서 5.2이닝 3실점으로 무난했지만, 마지막 경기였던 오클랜드전에서는 0.2이닝 5실점을 기록하면서 방출이 결정됐다.

니크로의 탓만은 아니었지만 결과가 최악이었다. 그가 나선 경기에서 토론토는 모두 패했고, 지구 순위 역시 2위로 내려앉았다. 토론토는 결국 포스트시즌에 나가지 못했고, 니크로 역시 자책하며 은퇴를 결심한다.

방출 후 친정팀 애틀랜타는 은퇴 경기를 위한 1달러 계약을 니크로에게 제의했다. 그리고 1987년 9월 27일, 니크로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상대로 3이닝을 소화한 뒤 유니폼을 벗었다.

비록 월드시리즈 무대도 밟지 못했고 864경기 중 고작 3경기를 뛰었을 뿐이지만, 니크로는 자신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 토론토를 잊지 않았다. 1997년 5회 차 만에 80.3%의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니크로는 입회식에서 토론토 구단과 팬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1987년 단 한 달이었지만, 나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준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그랜트 맥올리 공식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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