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별명] 사실 박정권은 ‘Mr. 옥토버’로 불리는 게 싫었다.txt
2021.10.03 22:01:27

 


 

[OSEN=인천, 민경훈 기자]그라운드 위에서 박정권 은퇴식이 진행되고 있다./ rumi@osen.co.kr



[OSEN=인천, 이후광 기자] 박정권(40)의 은퇴식에서 밝혀진 새로운 사실. 박정권은 현역 시절 자신이 ‘미스터 옥토버’로 불리는 게 싫었다.

2019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박정권은 현역 시절 유독 가을만 되면 맹타를 휘둘러 ‘미스터 옥토버’로 불렸다. 그의 포스트시즌 이력은 화려하다. 2009년과 2011년 플레이오프 MVP를 거머쥐었고, 2007년, 2010년, 2018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는데 2010년 14타수 5안타(1홈런) 6타점 타율 3할5푼7리 맹타를 휘두르며 한국시리즈 MVP의 영예를 안았다. 그의 가을야구 통산 성적은 62경기 타율 2할9푼6리 11홈런 40타점. 과거 와이번스 팬들은 사계절을 봄-여름-정권-겨울로 분류했다.

그러나 당사자는 그런 별명이 달갑지 않았다. 봄부터 꾸준히 잘해야 하는 야구를 가을에만 잘한다는 프레임이 싫었다. 2일 은퇴식에서 만난 박정권은 “선수 때는 그런 이미지가 싫었다. 야구가 사계절 운동인데 가을 이미지만 굳어진 것 같아 스트레스가 많았다”고 털어놨다.

 

[OSEN=인천, 민경훈 기자]SSG 박정권이 은퇴식을 앞두고 박정권의 큰딸 박예서 양이 시구를, 박정권과 작은 딸 박예아 양이 시타를 하고 있다.  21.10.02/rumi@osen.co.kr



하지만 시간이 흘러 ‘미스터 옥토버’는 박정권의 야구인생을 대표하는 키워드가 됐다. 가을 사나이라는 이미지는 결국 큰 경기에 강하다는 것이고, 그만큼 모든 프로 선수들의 꿈인 포스트시즌을 많이 밟아봤다는 의미다. 1년 후배 김강민은 “큰 경기를 하게 되면 가장 먼저 생각이 나서 의지하게 된다. 포스트시즌 할 때만큼은 그 누구보다 든든했다”고 미스터 옥토버를 치켜세웠다.

박정권도 막상 그라운드를 떠날 때가 되니 그 별명에 애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는 “끝나고 보니 그 정도 타이틀은 하나 있어도 괜찮겠다 싶었다. 선수생활을 그만 두니 가을 이미지가 좋아졌고, 앞으로는 가을만 되면 내 생각이 나지 않을까 싶다”고 멋쩍게 웃었다.

와이번스 왕조의 주역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박정권은 이제 SSG 2군 타격코치로 제2의 야구인생을 개척한다. 이미 지난 2020시즌부터 해오던 일이다. 박정권은 “2군 선수들과 이야기하면서 배우는 부분이 많다. 항상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낀다”며 “2군 선수가 1군에 올라가서 하는 걸 보면 긴장이 된다. 한국시리즈 때보다 훨씬 그렇다. 두 손이 저절로 모아지며, 편안한 자세로 볼 수가 없다”고 지도자 박정권의 삶을 전했다.

 

[OSEN=인천, 민경훈 기자]박정권이 은퇴식 중 그라운드 위에서 헹가래를 받고 있다. / rumi@osen.co.kr



현역 시절 와이번스는 박정권에게 어떤 팀이었을까. 그는 “다른 팀보다 잘 뭉치고 끈끈했다는 걸 자부할 수 있다”며 “김성근 감독님이 계셔서 워낙 많은 훈련을 했지만 지금도 당시 SK 왕조는 투수, 수비 등 모두 물 샐 틈이 없고 숨 쉴 공간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나오는 투수, 타자들마다 답답해서 경기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평가를 해준다. 모든 게 완벽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리고 그런 와이번스 왕조의 주역이 될 수 있었던 건 팬들의 열렬한 응원 덕분이었다. 박정권은 “은퇴를 선언한지 2년이 지나 팬들의 흥분이 가라앉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여전히 은퇴식을 기다려주시는 팬들, 무관중 은퇴식을 아쉬워하는 팬들이 많았다”며 “잘할 때나 못할 때나 정말 많은 응원을 주셨는데 은퇴 후 그 기억이 더욱 선명해진다. 생각하면 할수록 괜찮은 선수생활을 했고, 팬들의 과분한 사랑이 선수생활의 큰 힘이 됐다. 항상 감사한 마음밖에 없다”고 진심을 전했다.

큰 경기에 강했던 선배답게 최근 치열한 5강 싸움을 펼치고 있는 후배들을 향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은퇴선수 박정권에서 2군 타격코치 박정권이 된 그는 “모든 선수들이 어떻게든 해보려고 젖 먹던 힘까지 짜내고 있는 상황이다. 최선을 다한다고 다 이길 순 없겠지만 지금처럼 열심히 하다보면 가을야구에 갈 수 있다. 너무 큰 부담을 안 가졌으면 좋겠다”고 랜더스의 승승장구를 기원했다. /backligh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