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타 없이 빠르기만 한 캡틴? '홈런 8위' 키움이라 '더' 의미 있다
2021.11.01 09:32:15

키움 김혜성(가운데)./사진=키움 히어로즈

 

시즌 내내 장타에 목마름을 느낀 키움 히어로즈의 상황이 김혜성(22·키움)의 빠른 발을 더 의미 있게 만들었다.

올 시즌 키움의 주전 유격수로 올라선 김혜성은 자타공인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다. 리그 중간 2020 도쿄올림픽 참가라는 강행군을 소화하면서도 144경기 전 경기에 출장했다. 지난 8월에는 KBO리그 최연소 캡틴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졌지만, 그럼에도 김혜성은 타율 0.304(559타수 170안타) 3홈런 66타점 46도루 99득점, 출루율 0.367 장타율 0.372 OPS(출루율+장타율) 0.737로 정규 시즌을 마무리했다. 3루타, 홈런, 장타율, OPS를 제외한다면 모든 공격 지표에서 최고 성적을 기록했던 지난해를 뛰어넘은 활약이다.

하지만 김혜성이 팀에 기여하는 정도는 매일 지켜보는 팬들이 아니면 쉽게 알아채기 어렵다. 현대 야구의 흐름을 역행하는 그의 플레이 스타일 때문이다. 김혜성은 뛰어난 콘택트 능력으로 어떻게든 출루해 거침없이 베이스를 훔친다. 타율보다는 OPS, 도루보다는 홈런을 더 높게 평가하는 현대 야구의 흐름과는 정반대다. 자신의 첫 개인 타이틀이자 히어로즈 구단에도 처음인 도루왕은 그러한 플레이 스타일의 산물이다.

통계적으로 살펴본다면 도루는 득점 가치가 떨어진다. 스탯티즈 기준으로 올 시즌 도루 성공은 0.2점, 도루 실패는 -0.438점의 득점 가치를 가진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도루 실패에 따른 대가가 크다는 점이다. 통계학적으로 성공률이 75% 이상은 돼야 도루는 손익분기점을 넘는다. 따라서 도루는 성공 그 자체보다 실패를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나 성공률이 높아질수록 도루는 숫자 이상의 가치를 가질 수 있다. 도루 성공률이 높은 주자 탓에 야수들의 실책이 많아질 수도, 투수가 온전히 타자에 집중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한 점이 중요한 포스트시즌 무대에서 도루 성공률이 높은 주자는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그런 면에서 김혜성은 최고의 주자였다. 올 시즌 그의 도루 성공률 92%는 KBO리그 단일 시즌 30도루 이상 마크한 선수 중 가장 높은 수치이며, 단일 시즌 40도루 이상 기록하면서도 성공률 92% 이상을 함께 달성한 선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4명밖에 없다.

국내 한 구단의 전력분석원 A는 스타뉴스와 통화에서 "올 시즌 김혜성의 가치는 도루를 많이 시도하면서도 적게 실패했다는 데에서 빛을 발한다. 출루한 뒤 팀에 손해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많은 이득을 줬다. 기여도가 굉장히 높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키움 김혜성(왼쪽)./사진=키움 히어로즈

 

홈런보다 도루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스탯티즈 기준으로 올 시즌 홈런의 득점 가치는 2.058점으로 도루에 성공했을 때의 0.2점보다 무려 10배나 높다. 도루의 가치는 1루에서 2루 혹은 2루에서 3루, 1아웃에서 도루 또는 2아웃에서 도루 등 상황마다 미세한 차이가 있다. 편의를 위해 김혜성의 도루 시도 50회 중 46회 성공한 것을 단순 계산하면 7.448점이 나온다. 대략 홈런 3.6개에 해당하는 수치다.

국내 또 다른 구단 전력분석원 B는 "올해 유격수 최다 홈런은 하주석(27·한화)의 10개다. 그런 리그 상황에서 홈런 3.6개를 더 치는 유격수의 존재는 팀 타격에 큰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라고 전했다.

여기에 장타가 적었던 올해 KBO리그와 키움의 상황은 김혜성의 가치를 상향 조정하게 만든다. 홈런과 장타가 잘 나오는 팀에서 도루의 가치는 그렇지 않은 팀에서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뒤에서 홈런이 잘 나오는데 앞에서 애써 한 베이스를 더 훔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전력분석원 A는 "데이터를 살펴보면 'KBO리그와 메이저리그의 득점에 대한 도루의 가치는 비슷하다'고 치부하기 어려울 정도로 KBO리그에서 도루 가치는 높다. 아무래도 KBO리그가 장타가 덜 나오는 리그라 나온 결과가 아닐까 싶다"고 개인적 견해를 밝혔다.

올 시즌 KBO리그는 지난 6시즌 중 2019년에 이어 두 번째로 2루타와 홈런이 적은 시즌이었다. 그 중에서도 키움은 팀 홈런 90개로 리그 8번째였다. 김혜성의 빠른 발이 올 시즌 키움에 어떠한 의미를 지녔는지는 후반기 몇 경기만 지켜봐도 나온다. 키움의 주된 승리 패턴은 이렇다. 먼저 1번 타자 이용규(36)가 뛰어난 콘택트 능력과 인내심으로 많은 공을 골라낸다. 이용규의 타석당 투구 수는 4.24개로 리그 전체 4위에 해당한다.

뒤이어 김혜성이 안타로 출루해 빠른 발로 상대 배터리와 내야를 흔든다. 그럴 때 이정후(23)가 안타로 김혜성을 홈으로 불러들인다. 타구가 다소 짧아도 상관 없다. 김혜성은 어떻게든 홈까지 파고든다. 누가 봐도 뻔하지만, 키움은 이 패턴만으로도 리그 막판 9경기에서 6승 1무 2패를 거두며 극적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1일 있을 두산과 와일드카드전에서도 김혜성의 빠른 발은 키움의 주무기가 될 전망이다. 두산은 현재 포수진이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고 있어 김혜성을 견제하는 데 더욱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