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7R 외야수, 강백호-정우영에 밀려 접었던 '투수 꿈' 다시 펼친다
2021.11.12 08:55:05

정재원./사진=키움 히어로즈

 

"잘 풀리지 않아 야구를 그만두게 돼도 좋으니 투수로 다시 뛰고 싶었어요."

2020년 신인드래프트 2차 7라운드로 키움에 외야수로 지명돼 최근 투수로 보직을 바꾼 정재원(20)의 말이다. 그는 11일 구단을 통해 "구단에서 투수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주셨다. 그래서 바로 하겠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계속 투수를 해왔고 투수라는 포지션에 대한 열망이 컸다"고 뒷이야기를 전했다.

투수의 꿈을 안고 서울고에 입학했지만, 운이 좋지 않았다. 입학 당시 3학년에는 에이스 강백호(22·KT)와 막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주승우(22·키움)이 있었고, 2학년에도 최현일(21·LA 다저스), 정우영(21·LG), 이교훈(21·두산) 등이 있어 명함을 내밀기 어려웠다.

출전 기회를 잡기 위해 투수 대신 1루수로 나설 수밖에 없었고, 야수로 전환한 뒤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정재원은 "당시에 좋은 투수들이 많아 경기에 나서려면 1루수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면서 "처음 야수로 전환해서는 무서울 것이 없었다. 성적이 나오다 보니 점점 타격에 욕심이 났다"고 1학년 시절을 떠올렸다.

하지만 타자로서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남들보다 일찍 슬럼프를 겪었고 슬럼프를 극복하자 부상을 당했다. 다행히 키움의 선택을 받아 프로 무대에 진입했지만, 2년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정재원은 고3 시절 지명을 받지 못할 때를 대비해 독립야구단 입단을 고려할 정도로 야구에 대한 열정을 간직하면서도 자기 객관화가 되는 선수였다. 키움에 입단해서도 그런 모습은 여전했다.

최근 KBO리그에 불고 있는 야수→투수 전환의 바람도 그의 결정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는 "(최근 리그의 흐름보다는) 스스로 투수로 뛰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만약 올해 방출되면 군대에 다녀와서 다시 도전해보고 잘 안 되면 야구를 관두려고 했다"고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정재원(가운데)이 전남 고흥에서 열린 2021년 키움 마무리캠프에서 공을 던지려 하고 있다./사진=키움 히어로즈

 

투수 시절 정재원은 제구에 강점을 보이는 선수였다. 그는 "원래 제구로 승부하는 투수였다. 변화구는 슬라이더와 커브를 던졌는데 슬라이더에 타자들이 많이 속았다. 지금은 투수 시절의 감을 기억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때의 느낌을 되찾기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투수로서 롤 모델은 따로 두진 않았으나, 일본이 대표하는 에이스 센가 코다이를 눈여겨봤다. 정재원은 "투수로 뛰기로 마음먹고 많은 투구 영상을 찾아봤다. 그 중 센가의 투구가 인상적이었다. 관심 있는 투수는 아니었는데 어느 날 보고 정말 놀랐다. 화면 너머로 보면서도 공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이 느껴졌다"고 감탄했다.

가장 상대하고 싶은 타자로는 KBO리그 최고 타자 중 하나인 강백호를 꼽았다. 정재원은 "서울고 선배인 강백호 형을 상대해보고 싶다. 지금 프로에서 가장 뛰어난 타자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공이든 좋으니 강백호 형을 상대로 아웃 카운트를 잡아보고 싶다"고 맞대결을 꿈꿨다.

투수 전환을 결정한 지 이제 겨우 한 달이 된 만큼 갈 길이 멀다. 정재원 본인에 따르면 최고 구속은 아직 시속 14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본인이 하고 싶던 포지션이었던 만큼 잊고 있던 투수로서 느낌을 최근 선배와 동료 투수들에게 묻는 등 열의를 보이고 있다.

정재원은 "투수로 바꾼 지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일단 투수로서의 몸을 만드는 것이 최우선"이라면서 "그다음에 순발력이나 공 던지는 감각을 기르려 한다.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 내가 하고 싶던 것을 하는 것이라 매우 기대되고 재미있을 것 같다"고 들뜬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어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내가 선택한 길이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도 있다. 마운드 위에 서게 된다면 실감이 나지 않을 것 같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을 것 같다. 돌고 돌아 내가 정말 뛰고 싶었던 자리에서 뛰게 된 만큼 정말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