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선수가 20억이라니' 박경수, 이보다 혜자 계약이 어디있나
2021.11.16 21:51:40

 

KT 2루수 박경수가 15일 한국시리즈 2차전 1회초 무사 1,2루에서 두산 페르난데스를 병살타로 처리한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15일 고척스카이돔. 두산과 KT의 한국시리즈 2차전.

1회초 KT 선발 소형준은 마운드에 오르자마자 흔들리기 시작했다. 허경민과 강승호에게 연거푸 볼넷을 내줬다. 허무하게 내준 무사 1, 2루. 여기서 박경수가 날아올랐다. 호세 페르난데스가 때린 총알같은 타구를 몸을 날려 잡아냈다. 다음 판단은 더 대단했다. 잡은 것도 대단한데 박경수는 넘어진 상태에서 2루로 공을 뿌리기까지 했다. 그의 과감한 판단은 1루 주자 강승호를 아웃시킨데 이어 발이 느린 페르난데스 역시 1루에서 잡으면서 순식간에 병살타가 됐다. 호수비라는 말로는 부족한 명품 수비였다.

박경수는 호수비 이후 가슴을 두드리는 세리머니를 펼치며 포효했고, 그렇게 다시 KT 벤치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올 시즌 박경수의 호수비는 결정적일 때 나왔다. 10월 31일 대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정규리그 1위 결정전이었다. 당시 KT가 1-0으로 앞선 9회말 선두타자로 나온 구자욱의 안타성 타구를 박경수가 몸을 날려 잡아냈다. 그리고 이번과 마찬가지로 포효했다.

박경수의 활약은 수비에서 그치지 않았다. KT가 1-0 리드를 지키고 있던 5회말 선두타자로 나와 중전 안타로 출루해 공격의 물꼬를 텄다. 이어 심우준의 번트 안타로 2루까지 진루한 뒤 조용호의 적시타 때 홈을 밟아 추가점을 안겼다. KT는 이후 4점을 더 뽑으면서 승기를 굳힐 수 있었다. 박경수의 플레이가 빅이닝의 시발점이 된 셈이다.

프로 데뷔 18년 만에 밟은 한국시리즈 무대에서 베테랑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박경수는 2015년 FA로 4년 총액 18억 2000만 원에 LG에서 KT로 이적했다. 마법사 유니폼을 갈아입은 후 4년간 524경기, 타율 0.280, 82홈런, 293타점 등 공수에서 개인 최고 기록을 세우며, 팀의 중심 타자로 자리매김했다. 2019시즌이 끝난 후 다시 FA 자격을 얻은 박경수는 잔류를 택했다. 3년 총액 26억에 도장을 찍었다. 보장 금액은 3년 20억 원 수준이다. 나이가 들수록 기량과 성적은 대개 떨어진다. 박경수도 마찬가지다. 특히 공격에서는 그랬다. 두 번째 FA 계약을 맺은 후 올해 가장 적은 118경기에 뛰었고, 처음으로 두자리 수 홈런을 기록하지 못했다. 타율도 1할대(0.192)에 그쳤다. 하지만 수비에서는 전성기 시절 못지 않다. 올 시즌 수비 실책은 단 3개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보장 금액 20억원의 값어치는 충분히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날 공수 모두 강렬한 인상을 남겨 2차전 데일리 최우수선수(MVP)는 박경수에게 돌아갔다. 경기 뒤 만난 박경수는 "오늘 페르난데스의 타구가 더 어려웠다"며 "더블플레이가 될 줄은 몰랐지만, 심우준이 1루에 좋은 송구를 했다. 나도 모르게 감정이 폭발했다"고 호수비 상황을 짚었다. 이어 "공격으로 데일리 MVP를 받고 싶었는데, 고참을 대표해 받는 거라고 생각한다. 1차전에선 젊은 선수들이 잘했고, 오늘 경기 전에는 '노땅들이 해보자고 했다'. 다행히 (황)재균이가 홈런 치고, 나는 수비에서 보탬이 됐고, (유)한준이 형은 사구, (장)성우는 중요할 때 적시타를 쳤다.이 모든 것을 대표해 내가 받는 걸로 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강철 감독 역시 "수비로 이겼다. 1회 분위기가 다운되려고 하는 상황이었는데 박경수의 수비에 더그아웃 분위기가 확 올라왔다. 거기에 황재균이 홈런을 쳐서 분위기를 완전히 가져오는 계기가 됐다"며 "막내 소형준이 던지는데 베테랑들이 집중력 있는 수비를 보여줬다"고 내야 고참들을 칭찬했다.

지난해가 되서야 처음으로 가을야구를 해봤고, 올해는 더 큰 무대인 한국시리즈에서 뛰고 있다. 큰 경기에 긴장감을 느낄 법도 하지만 박경수는 의연했다. 그는 "한국시리즈라고 작년 플레이오프와 큰 차이는 없다. 더 큰 무대지만 같은 포스트시즌 경기라 비슷한 것 같다. 경기 시작 후 이닝을 거듭할수록 주말 정규리그 경기를 하는 기분으로, 긴장감이 점점 낮아졌다"고 여유를 찾은 모습이었다.

그의 말대로 긴장감은 온데간데 없다. 오히려 펄펄 날고 있다. 공격이면 공격, 수비면 수비 KT가 확실하게 주도권을 잡았다.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는 얼마나 더 완벽한 플레이를 보여줄지 관심이 모아진다.

KT 2루수 박경수가 15일 열린 한국시리즈 2차전 1회 무사 1, 2루에서 페르난데스의 타구를 잡아 2루로 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