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가식 아니에요" 눈물 참은 구자욱, 그가 전한 진심.txt
2021.12.11 15:21:32

삼성 구자욱이 지난 1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2021 신한은행 SOL KBO리그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 직전 숨을 고르고 있다./사진=삼성 라이온즈

 

"20년 전 야구가 좋아서 시작했던 어린 소년에게 오늘에서야 이렇게 이 상을 안기게 된 것 같습니다. 굉장히 뭉클한 것 같고 오늘은 제가 야구하면서 가장 행복한 밤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21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수상자 구자욱(28)은 자기소개 후 5초간 말을 잇지 못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이어진 생애 첫 골든글러브 수상소감은 뒤죽박죽이었다. 하지만 지켜본 모두가 그의 진심 어린 소감을 알아들었다. 시상식이 끝난 뒤에도 골든글러브를 꼭 안아 든 구자욱의 눈가에는 갈 길 잃은 한 방울이 눈치 없이 남아 있었다.

지난 10일 열린 2021 KBO리그 골든글러브 시상식 직후 만난 구자욱은 "아직 정말 꿈 같다. 감격에 눈시울이 붉어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올해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은 쟁쟁한 후보들로 인해 주요 격전지로 뽑혔다. 투표 결과가 이를 증명했다. 득표 3위 구자욱이 143표, 4위 전준우(35·롯데)가 133표로 불과 10표 차였다.

안 될 가능성도 있던 만큼 어느 정도 마음을 내려놓고 참여한 시상식이었다. 그래서 수트, 와이셔츠, 넥타이를 모두 검은색으로 통일해 말끔하게 차려입었다. 구자욱은 "더 멋있게 차려입고 싶고, 나비넥타이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받는다는 확신이 없었다. 너무 상을 기대하는 사람처럼 보일 것도 같았다. 그리고 사실 정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2015년 풀타임 데뷔 후 꾸준히 후보로 거론되면서도 매번 눈앞에서 사라진 것이 골든글러브였다. 속상할 법도 했지만, 훈련에 더 매진하는 쪽을 택했다. 구자욱은 "조금만 더하면 이 상을 탈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나가 부족한 것 같았다. 겨울에 이런 조명 밑에 서고 싶어서 더 열심히 갈고 닦았다"면서 "야구가 이래서 정말 어렵고 또 이렇기에 재밌다. 야구가 더 좋아졌다"고 미소지었다.


삼성 구자욱(왼쪽)과 강민호가 지난 1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2021 신한은행 SOL KBO리그 골든글러브 시상식 직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김동윤 기자


그렇게 갈고닦은 실력으로 구자욱은 커리어 첫 20홈런-20도루, 득점왕에 오르는 등 뛰어난 성적을 남겼다. 여기에 골든글러브를 수상할 수 있었던 비결로 팀 성적을 언급했다. 구자욱은 "쟁쟁한 후보들이 많았지만,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팀 덕분에 이렇게 좋은 상을 받을 수 있었다"면서 "정말 가식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같이 싸워준 팀원들이 가장 고맙다"고 공을 돌렸다.

이날 시상식에서 삼성 구단은 뜻깊은 기록을 남겼다. 포수 부문 수상자 강민호(36)에 이어 구자욱이 골든글러브를 추가하면서 삼성은 KBO리그 역대 최다 골든글러브 수상자(69명) 배출 구단이라는 영예를 안았다. 특히 구자욱의 골든글러브는 2014년 최형우 이후 삼성 외야수로서는 처음이다. 이에 구자욱은 "오랜만에 (외야수 골든글러브가) 나와 팬분들에게 가장 죄송하다. 그동안 팀 성적이 좋지 않고 선수들도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들 굉장히 아쉬워했는데 이렇게 6년 만에 팬분들에게 보답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전했다.

인터뷰 시작에도 약간의 떨림이 있던 그의 목소리는 차츰 차분해졌다. 눈물도 끝까지 참아냈다. 어릴적 꿈을 이룬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는 다시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구자욱은 "우승을 한 번도 못 해봤다. 우승이라는 꿈을 이루고 싶고, 그 속에서 내가 MVP로 활약하면 더 좋을 것 같다"라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