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들의 절규 "제가 36년 됐는데...권투선수 링에 올라가는 기분 아시나요"
2022.03.25 02:45:46

허운 한국야구위원회(KBO) 심판위원장이 23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 서울에서 열린 2022년 KBO 스트라이크 존 설명회에서 스트라이크 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심판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방송사에 당연히 요청했겠죠.", "주심을 보는 날이면 권투 선수가 링에 올라가는 기분이다.", "제가 36년 심판 생활을 했지만 보상 판정은 있을 수도 없고 할 수도 없다."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었다. 허운(63) 한국야구위원회(KBO) 심판위원장이 올 시즌 정상화 될 스트라이크 존을 설명하면서 소통했다.

KBO는 23일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서울에서 2022년 스트라이크 존 설명회를 개최했다.

올 시즌 KBO 리그의 최대 화두로 스트라이크 존 정상화가 떠오르고 있다. KBO 공식 야구 규칙에 따르면 스트라이크 존은 '유니폼 어깨 윗부분과 바지 윗부분 중간의 수평선을 상한선으로 하고, 무릎 아랫 부분을 하한선으로 하는 홈 플레이트 상공'이라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지난 시즌까지 이와 같은 기준은 정확하게 지켜지지 않았다. 점점 스트라이크 존은 좁아졌고, 심판들도 위축됐다. 경기 시간 역시 늘어졌다. 2017년 9이닝 당 3.18개이던 볼넷은 지난해 4.19개까지 증가했다.

허 위원장은 "타자의 스트라이드(타격 시 뒷발에 모은 힘을 앞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앞발을 내딛는 동작)를 하는 순간부터 스트라이크 존의 상단과 하단(기준)이 결정된다. 타자의 팔꿈치 부분이 상단으로 형성된다"고 정의한 뒤 "예년에는 규칙이 정해져 있었지만 존에 들어오는 볼을 스트라이크로 안 주거나 혹은 못 주거나, 놓치는 부분이 많았다. 심판의 책임"이라고 밝혔다. 이어 "올해는 최대한 적극적으로 규칙에 맞춰서 스트라이크 콜을 하겠다. 이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실수를 하는 심판들은 제재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허 위원장은 "예전엔 심판진이 1경기를 무사히 잘 끝내는 게 목적이었다. 선수와 코칭스태프 쪽에서 격렬한 항의가 있어도 원만하게 가자는 게 최대 목표였다. 때로는 못본 척하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었다"면서 "이제는 규칙대로 안하면 단호하게 조치를 취할 것이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다. KBO 리그 전체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전체를 위해 가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허운 심판위원장이 매년 점점 좁아지고 있는 스트라이크 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KBO는 스트라이크 존 정상화를 통해 볼넷 감소, 경기 시간 단축, 공격적인 투구와 타격 등의 변화된 모습을 팬들에게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KBO 심판진은 이번 스프링캠프 기간 동안 10개 구단을 돌면서 정상화 되는 스트라이크 존에 관한 내용을 상세하게 전달했다. 현장 반응은 투수와 타자 사이에서 나뉘고 있다.

허 위원장은 "캠프 기간 동안 감독과 코칭스태프 쪽에서는 '정상화되는 게 맞다. 스트라이크 존이 타이트해서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해왔다. 투수 쪽에서는 '정말 그렇게 하는 것인가. 그동안 매우 힘들었다. 던질 데가 없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타자 쪽에서는 '갑자기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하냐'고 그러더라. 하지만 갑자기 하는 게 아니다. 그동안 (타자들이) 혜택을 받은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허 위원장은 심판위원들을 대표해 고충도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는 "심판들은 은퇴할 때까지 이 일을 하는 게 목적이다.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는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저희는 주심을 보는 날이면, 권투 선수가 링에 올라가는 기분이다. 그런 압박감을 받으며 경기를 준비한다. 만약 내일 주심으로 들어간다면 전날부터 몸조리를 한다. 평가를 나쁘게 받고, 압박감을 못 이겨 그만두는 심판들도 많았다. 굉장히 어렵다. 쉬운 게 아니다"라며 절규에 가까운 외침을 토해냈다.

허 위원장은 '보상 판정'에 대해서도 "제가 36년 심판 생활을 했지만 보상 판정에는 동의할 수 없다. 매 경기가 TV로 중계되며, 미디어가 지켜보고 있다. 그 상황에서 보상 판정을 한다? 불가능하고 있을 수도 없으며, 할 수도 없다. 심판의 실수는 한 번으로 끝내야 한다. 그 실수를 보상하기 위해 다른 판정을 해서는 안 된다. 그건 심판의 기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KBO 리그 팬들은 대부분 중계 방송을 통해 야구를 접한다. 하지만 방송사가 제공하는 투구 궤적 시스템(PTS·Pitch Tracking System)은 실제 심판들이 보는 스트라이크 존과 다를 수 있다. 허 위원장은 "TV 중계에 나오는 PTS의 스트라이크 존은 실제 야구 규칙의 스트라이크 존과 100% 맞지 않는다. 방송사에도 이와 같은 부분의 수정을 당연히 요청했겠죠. 심판들이 죽어가고 있는데"라면서 "시청률 등 방송사의 입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중계 방송사마다 PTS는 각각 다르다. 때로는 맞지도 않는다. PTS로 인한 오해 때문에 심판들이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KBO에서도 적극적으로 방송사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허운(오른쪽) 심판위원장이 미디어를 대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