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뽀가 루틴", "저 한글 뭐야?" 국경 뛰어넘은 우정, 저평가 뒤집었다
2022.06.03 15:22:14

 

KIA 타이거즈 황대인(왼쪽)과 소크라테스 브리토./사진=OSEN

 

2022시즌 KBO리그 초반 판도를 뒤흔드는 두 팀이 있다. 2위 키움 히어로즈와 4위 KIA 타이거즈다.

4일 경기까지 마무리된 현재, 키움은 33승 22패, KIA는 30승 24패로 1위 SSG 랜더스(35승 2무 18패), 3위 LG 트윈스(31승 1무 23패)와 빅4를 형성하고 있다.

시즌 전만 해도 두 팀이 이 정도 활약을 보여주리라 기대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KIA는 지난해 9위를 기록한 전력에서 많은 부분 개선이 필요했고, 키움은 별다른 보강 없이 선수 유출만 계속됐다. 두 팀을 향한 전문가들의 현실적인 기대치는 최대 와일드카드 경쟁이었다.

외국인 선수들의 기대치가 높지 않은 점도 저평가의 이유가 됐다. 시범경기, 4월 한 달을 거치면서 새로 온 외국인 선수들이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하면서 전문가들의 예상에는 힘이 실렸다. 그중에서도 KIA의 소크라테스 브리토(30)는 4월 한 달간 타율 0.227, 1홈런 9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643을 기록하는 데 그치며 퇴출 위기설에도 휘말렸다.

하지만 5월 4일 광주 키움전에서 3타수 3안타를 몰아친 것을 시작으로 타격감이 폭발했다. 5월 한 달은 타율 0.415, 5홈런 28타점, OPS 1.146으로 월간 MVP급 활약을 펼쳤다. 단순 타격 지표만 좋은 것이 아니라 5월 18일 사직 롯데전, 31일 잠실 두산전에서는 각각 역전 스리런포로 경기를 뒤집는 등 뛰어난 클러치 능력으로 '소크라테스 열풍'을 일으켰다.

5월 31일~6월 2일 만난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그의 곁에는 황대인(26)이라는 절친이 있었다. 무던한 성격으로 모든 KIA 동료 및 코치진과 두루두루 잘 지내는 소크라테스지만, 황대인은 조금 더 특별했다. 소크라테스는 "황대인은 항상 좋은 분위기를 가진 선수다. 내가 기분이 다운돼 있을 때 나를 (다시) 신나고 즐겁게 하는 친구라 정말 좋아한다. 그와 꼭 오랫동안 함께 야구하고 싶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KIA의 5월 승률 1위(18승 8패)를 이끈 환상적인 2인조이기도 했다. KBO리그 등록명의 앞 글자를 따 '황-소 듀오'라 불린 이들은 소크라테스가 득점을 하고 들어오면 황대인이 이마나 머리에 뽀뽀하는 장면으로 팬들 사이에서 더욱 유명해졌다. 이에 황대인은 "소크라테스가 중요한 순간 잘해주다 보니 너무 예뻐 보여서 뽀뽀를 했다. 5월 내내 한 것 같은데 뽀뽀를 하니 나도 소크라테스도 결과가 좋아 이젠 루틴이 됐다. 이젠 소크라테스가 먼저 와서 또 해달라고 한다"고 웃었다.

 

KIA 황대인(오른쪽)이 홈런을 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온 소크라테스 브리토의 머리에 뽀뽀하고 있다./사진=OSEN


KIA의 황-소 듀오 못지않게 팀의 상승세를 이끄는 외국인 선수-국내 선수 조합이 2위 키움에도 있다. 키움의 이승호(23)-타일러 애플러(29)로 이뤄진 감-사 듀오는 저평가를 뒤집은 반전의 주인공이다. 팬들로부터 감자(이승호), 사과(애플러)로 불리는 두 사람은 시즌 전 큰 기대를 받지 못했다.

이승호는 2019년 선발 투수로서 반짝 활약을 보여준 뒤 내리 2년을 5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하락세를 겪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불펜 투수로 완전히 전환했고, 이 결정은 신의 한 수였다. 개막 후 한 달 넘게 0점대 평균자책점을 유지하는 특급 불펜이 됐다. 지난달 19일 창원 NC전부터는 마무리로 낙점돼 5연속 세이브, 2일 고척 삼성전에서는 시즌 첫 승도 거뒀다. 24경기 2승 1패 6홀드 6세이브, 평균자책점 1.16. 이젠 명실상부한 리그 정상급 마무리다.

이승호가 팀에 기여하는 것은 성적만이 아니다. 낯선 환경을 접한 애플러가 히어로즈에 빠르게 적응하는 1등 공신이다. 지난달 고척 한화전을 앞두고 만난 애플러는 "(이)승호는 내 가장 친한 동료다. 같이 얘기하면서 장난을 많이 친다. 승호는 내게 영어를 배우고, 나는 승호에게 한국말을 배운다. '저 글자는 뭐야?'라면서 전광판의 한글이 무엇인지 묻곤 한다"고 미소 지었다.

애플러 역시 영입 당시만 해도 메이저리그 경력이 없고 연봉 총액 40만 달러에 계약하면서 기대치가 매우 낮았다. 4월 한 달간 5경기 2승 1패, 평균자책점 3.71로 평범해 예상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그러나 적응하고 있을 뿐이었다. 지난달 21일 고척 한화전에서 공 88개로 7⅓이닝을 1실점으로 막아내더니, 27일 사직 롯데전에서는 97개의 공으로 9이닝 무사사구 완봉승을 거뒀다. 이닝 소화가 우려된다는 초반 평가를 완벽히 뒤집은 활약. 시즌 성적 역시 11경기 4승 2패 평균자책점 3.06으로 차츰 외국인 선수에 기대하는 지표에 가까워지고 있다.

소크라테스와 애플러에게는 국경을 뛰어넘은 우정을 보여준 한국인 절친이 있다는 것 외에도 공통점이 있었다. 과거 경력에 연연하지 않고 KBO리그에 진지하게 접근하는 자세와 한국 문화와 동료들에게 적응하려는 노력이다. 구단 관계자들을 포함해 동료 선수들까지 이들에 대한 인성과 적응력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적응을 마친 이들의 활약은 자신을 향한 저평가는 물론이고 소속팀을 향한 저평가까지 뒤집으면서 KBO리그 초반 흥행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키움 히어로즈 타일러 애플러(왼쪽)와 이승호./사진=김동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