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이그의 오프사이드와 통 큰 양현종
2022.06.12 11:48:30

 

KBS N Sports 중계화면



[OSEN=백종인 객원기자] 어딘가 이상하다. TV 중계방송에 묘한 장면이다. 어제(11일) 광주 경기(KIA-키움) 말이다. 히어로즈 이정후 타석 때면 나타난다. 화면 한쪽에 뭔가 걸린다. 준비 중인 다음타자다. 야시엘 푸이그였다.

분명 거기가 아닌 것 같은데. 유독 그의 순서에만 나타난다. 그러고 보니 시리즈 내내 그랬다. 대기 타석부터 TV 출연이다. 남들 2배로 컷을 받는다. 왠지 그런 생각도 든다. 한발 두발, 조금씩 더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저러다 포수 뒤까지 가는 거 아냐?’ 거긴 안되는데…. 챔피언스 필드의 신성한 곳이다. 홈 팀의 전임 감독이 예술성을 남긴 자리다. 꽃범호를 매복시킨 ‘창조 시프트’의 역사적 명소다(2015년 5월 13일). 물론 규칙 위반이라는 현실에 부딪혀 좌절됐다. 하지만 ‘혁신적인 시프트’라는 mlb.com의 극찬(?)을 받았다.

 

SPOTVㆍmlb.com 캡처



각설하고. KBS N Sports 박용택 해설위원이 기억을 떠올린다. “저도 현역 때 저런 적이 있어요. 조금이라도 가깝게 가면 투수 공을 보기 좋거든요. 그러다가 한번 심판에게 제지를 당해 본래 위치로 돌아간 적이 있었죠. ㅋㅋㅋ”

창조 시프트와 박 위원의 추억. 그것 만이 아니다. 챔피언스 필드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를 소환시킨다. 2016년 여름의 일이다. 임창용과 오재원의 공동 주연작이다. 2루 주자를 향해 날아간 위협적인 공 하나. 이른바 ‘창조 견제’ 사건이다.

베이스에는 수비수가 없었다. 그런데 투수 혼자 픽오프 플레이를 했다. 뱀직구를 주자 머리쪽으로 날린 것이다. 김태형 감독이 노발대발했다. 심판이 옐로카드(경고)를 꺼냈다. KBO는 추가로 출장정지 3게임, 사회봉사 120시간의 제재를 내렸다.

몇 년이 지난 후다. 가해자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당시 팀내에는 무관심 도루를 하는 상대를 견제하는 척하면서 맞추라는 지시가 내려진 상태였다. 오재원에게는 미안했다.”

이런 해명/사과가 나오기까지 다양한 추측이 존재했다. ‘평소 감정이 좀 있는 것 같다’, ‘2루에서 사인을 훔쳐서 그랬다’ 등등이다. 그 중 유력한 추론이 대기 타석 문제였다. 피해자도 포수 쪽으로 꽤 다가섰다. 이게 못 마땅한 가해자가 벼르다가 사건이 터졌다는 짐작이다. 타석에서도 위협구로 의심되는 안쪽 공이 두어 차례 있었다. 그런 진술이 이런 의심에 무게를 실었다.

 

임창용 투구 때 오재원의 대기 타석 모습. SKY Sports TV 중계화면



MLB에서도 사건이 있었다. 2017년 텍사스 경기 때다. 18-8로 하품 나오는 8회였다. 2루심이 갑자기 타임을 건다. 그리고 구심에게 뭔가를 얘기한다. 대기 타석의 애드리안 벨트레가 문제였다. 너무 나왔으니 뒤로 물러서게 하라는 지시였다.

영구 결번 후보는 발끈했다. 가뜩이나 져서 열 받는데, 트집까지 잡는다는 생각이다. 개콘급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대기타석 매트를 포수 뒤쪽으로 끌고 나온다. 항명이다. 감히 어딜. 2루심은 즉각 퇴장을 선언했다. 항의하는 제프 베니스타 감독도 마찬가지다. “당신도 나가.”

 

벨트레가 대기 타석 매트를 옮기는 개그를 펼치고 있다.    mlb.tv 화면



우리는 대기 타석, 또는 웨이팅 서클(waiting circle)로 부른다. 미국에서는 ‘온 데크 서클(on deck circle)’, 또는 간단히 ‘온 데크’라고 한다. 여기에 관한 명확한 규정은 없다. 개리 세더스트롬이라는 심판이 있다. 30년 넘게 빅리그에서 일했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그 부분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없다. 심지어 나는 그 쪽을 (온 데크 쪽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즉 온 사이드(on-side)도, 오프 사이드(off-side)도 없는 셈이다. 다만 이의제기는 가능하다. 수비 쪽에서의 항의다. 방해가 된다, 또는 시야에 거슬린다, 신경 쓰인다. 등등의 이유를 대면 그만이다. 심판에 요청하면 들어주는 게 일반적이다. 박용택 위원의 경우처럼.

 

책임 이닝을 마친 후 관중들의 환호에 답례하는 양현종. / KIA 제공



어제(11일) 선발 투수는 녹록치 않은 날이었다. 대기록이 걸려 부담 백배다. 타구에 맞아 다리도 아프다. 이래저래 제대로 힘쓰기 어려운 날이다. 이럴 땐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작은 일에도 신경이 곤두선다.

게다가 좌완 투수다. 시야에 더 잘 잡힌다. 그래서 까탈스러운 투수도 많다. 현역시절 제이미 모이어가 대표적이다. 그런 방식에 알레르기 반응이다. 발견 족족 구심에게 이른다. 이런 인터뷰도 남겼다. “작은 이득이라도 얻기 위해 너무 집요한 타자들이 있다. 특히 양키스, 브레이브스, 블루제이스에 그런 선수들이 많아서 피곤했다.”

심지어 어제(11일)는 더 그렇다. 역전 투런(3회)도 얻어맞았다. 예민하게 굴만도 하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구구절절 따지지도 않는다. 타이밍 잡고, 구질 파악만 하는 게 아니다. 뻔히 보이는 데서 하품도 하고, 기지개도 켠다. 슬금슬금 한 발짝씩 나오기도 한다. 그래도 그만이다. ‘이봐 젊은 친구, 신사답게 행동해.’ 눈빛조차 그런 건 없다. 통 크고, 너그럽고, 무던하다. 153승이라는 숫자가 어색할 틈이 없다.

칼럼니스트 일간스포츠 前 야구팀장 / goorada@osen.co.kr